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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30 비내리는 고모령
  2. 2006.09.30 홍콩 마카오
  3. 2006.09.30 테네시의 차타누가
  4. 2006.09.30 터키 궤레메 계곡
비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전설과 현인의 노래






집필자 : son13601
“비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전설과 현인의 노래

박시춘에 의해 작곡되어 가수 현인에 의해 1946년에 불린 “비내리는 고모령”은 일본제국주의 시대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을 담은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행가였다.

대구 방향에서 본 고모령

고모령은 대구시 동촌 유원지 부근에 있는 인터불고 호텔과 만촌 자전거 경기장 사이의 길을 통해서 고모리와 고모역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데, 이곳에 전해지는 전설은 유행가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다.

고모령과 관련이 있는 전설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오누이 힘겨루기” 전설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제국주의 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식과 어머니의 일화를 간직한 전설이 그것이다.

고모령에 얽힌 전설 중 “오누이 힘겨루기” 는 전국에 걸쳐 전승되는 이야기로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갓날 갓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이 마을에는 남매를 데리고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이 남매는 힘이 어찌나 센지 나라에서 그 힘을 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특히 누이동생은 여자였지만 오빠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대단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사람들이 자기보다 누이동생을 더 칭찬하고 아끼는 것을 본 오빠는 점점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흥, 계집애 주제에 남자인 나보다 힘이 셀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왜 동생만 이뻐하지? 그렇지, 내가 누이와 힘겨루기 시합을 해서 내가 이기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다져먹은 오빠는 어머니가 외출한 날을 골라 시합을 하리라 작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볼일을 보러 외출한 틈을 타서 오빠는 누이동생을 들판으로 불러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남매가 사는 마을 주변에는 산이 없고 평지만 있었다. 들판으로 불려나온 누이동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누이동생의 감정을 건드리기 위해 살살 약을 올렸다. “내가 요즘 보니까 네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 돼서 그런다.” 약이 오른 누이동생은 오빠의 계획에 말려들어 그만 자신의 힘이 줄어들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오빠와 힘겨루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오빠는 못이기는 척 하고 동생과 내기를 시작했다. 들판에 있는 흙을 파다가 산을 쌓는 것인데, 해질 때까지 누가 높게 쌓는가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열심히 흙을 퍼날라다가 산을 쌓기 시작했다.

오빠는 저고리의 앞섶으로 흙을 날라다 산을 쌓았고, 누이동생은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다 쌓았는데, 해가 질 때 서로 비교를 해보니까 누이동생이 쌓은 산이 훨씬 더 높았다.

이에 심술이 난 오빠는 누이동생이 쌓은 산을 발로 뭉개버렸다. 그리하여 두 개의 봉우리 중에 뭉툭하게 된 것이 누이동생이 쌓았던 봉우리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이 두 봉우리는 형제봉, 혹은 남매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남매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에 집을 나와 버렸다. 마을을 나와서 작은 고갯길을 넘어가던 어머니는 차마 그냥 갈 수 없어서 그곳에서 고개를 돌려 남매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고 하여 고모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고모령 옆에 있는 형제봉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 줄기가 북쪽으로는 낙동강에 닿아 있고, 동쪽은 경산벌판이며, 서쪽은 대구가 되는데, 이곳에서 대구시 전체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전략상 대단히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철길과 함께 잡은 고모령 원경

고모령과 관련된 일본제국시대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왜정 시대에 경산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살았는데, 독립운동을 하던 두 아들은 왜놈에게 잡혀서 모두 대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편없이 기른 두 아들이 모두 감옥에 가 있는 것이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는지라 시간만 나면 감옥으로 면회를 가곤 했다. 그날도 대구 감옥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모령 고갯길에 이르렀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고모령을 넘어오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경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고개를 넘어야 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대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고개는 고개를 돌려서 본다는 고(顧)와 어머니 모(母)를 붙여서 고모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지니고 있는 고모령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노래인 “비내리는 고모령”은 전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제 그 노래를 보자.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1절)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몇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2절)

눈물어린 인생고개 몇구비드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그린 하소 졸아가면서

오늘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3절)

노래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고모령을 넘어 만리타국으로 떠나온 아들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모역 방향에서 본 고모령

일본제국주의자들로 인해 고향과 어머니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애끓는 마음이 아주 잘 표현된 노래인데, 이것이 현인이란 가수의 저음에 실려 발표되자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고모령 입구에는 1991년에 세운 고모령 노래비가 서 있고, 그 옆에는 고모령에 대한 취재를 하다가 기차에 깔려 사고를 당한 김문호 기자의 불망비도 서 있다.

비내리는 고모령을 취재하다 목숨을 잃은 김문호 기자 불망비

복잡한 호텔 입구를 지나 한적한 고갯길로 접어들면 바로 고모령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아주 나지막한 고갯길이지만 상당히 긴 거리를 걸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길이기에 누구나 그 고갯길을 가다보면 한 번쯤은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고개가 바로 고모령이다.

고모령에서 고모역으로 가는 길목과 철길

고개를 넘어 한참을 내려가면 조그만 마을이 나오는데, 화려한 호텔이 있던 고개 너머의 대구와는 정반대로 아주 시골스런 동네를 만나게 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소박하고 조그마한 기차역인 고모역이 나오는데, 타고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역이다.

1925년에 영업을 시작한 고모역은 197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역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화물차만 머무르는 간이역으로 바뀌었다.

기차가 서지 않는 고모역 전경

민족의 한을 노래한 “비내리는 고모령”으로 유명한 이곳이지만 기차역인 고모역 부근은 한 맺힌 전설 때문인지 열차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KTX 열차까지 이 부근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니 고모령은 정말로 한 많은 고개인지도 모를 일이다.

고모역 부근의 지도

보슬 보슬 보슬비가 오는 봄날이나, 비가 억수같이 오는 여름날에 이 고개를 걸어 넘어가 보면서 전설과 노래에 얽힌 어머니의 한과 애틋한 민족 정서를 느껴보는 것도 우리 문화를 새롭게 체험하는 한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필자가 지니고 있음)

내용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우리문화사랑방

(출처 : '“비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전설과 현인의 노래'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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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gfriend

2006. 9. 30. 15:01 여행,레저

홍콩 마카오

홍콩 여행기 ⑥ '마카오'다녀오기~
2006/07/31 09:00
김신묵 조회807 추천0

■ 마카오(MACAU) (澳門)돌아보기

유럽의 향취가 느껴지는 곳...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

라틴과 아시아 문화가 혼합된 매혹적인 섬...

마카오를 일컫는 말이다.

450년동안 포르투칼 지배아래 있다가 지난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으며

지금은 홍콩의 특별행정구(SAR)에 속해 있는 카지노로 유명한 섬...

홍콩까지 왔으니 가까이 있는 마카오를 둘러보기로 했다.

ㅇ 홍콩에서 마카오 넘어가기...

마카오는 홍콩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섬으로 페리호를 타고 90분이면 도착한다.

승완(上環)에 있는 Macau 페리 터미널이나 구룡에 있는 China 페리 터미널에서 탈 수 있는데 24시간 홍콩과 마카오를 오고 가고 있어서 표를 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구룡에 있는 China 페리 터미널은 찾는데 많이 힘들었다.

스타페리 타는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여서 걸어가기로 하였는데 곳곳이 공사중인지라 인도가 막히고 없어지기 일쑤~

물어 물어 찾아 갔지만 덩치만 커다란 터미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매표소를 찾기도 어렵고,출국수속 하는 경로나 절차를 밟기까지는 초행길인 여행자는 당황하기에 딱 좋은 그런 조건이었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 타고 갔던 고속 페리호.... 왕복 560 HKD (약 68,000원) >

China 페리 터미널을 나서는것이 곧 홍콩을 출국하는것이다. (세관 및 출입국 심사 통과, 신고서 작성 제출 등...)

일단 홍콩을 출국해서 마카오를 입국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다시 마카오를 출국해서 홍콩으로 입국하는 셈이 된다.

홍콩 체류 90일이 다되면 이렇게 마카오를 한번 다녀오면 다시 90일을 체류 할 수 있다고 한다.

1시간 30분 남짓 남중국해를 달려 마카오로 가는데 그날 따라 파도가 치고 울렁거려 배멀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마카오에 도착하여 페리터미널 밖으로 나서니 택시운전 겸 관광가이드들이 모여든다.

2시간 택시투어에 1인당 500HKD... 못들은체 하고 있으니 400HKD...300HKD 계속 내려간다.

그냥버스를 타고 가장 번화가라 할수 있는 시내중심가 (中區) (Central)로 이동했다.

<마카오 시내버스...>

ㅇ 마카오 시내 중심가 둘러보기~

마카오의시내 중심가는세나도 광장(Senato Square)이다.

세나도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연꽃이 심어진 분수대를 중심으로 잘 정비된 바닥과 건물들이 멋진 곳이다.

광장 오른쪽에는인자당(仁慈堂)...'자비의 성체 박물관'(The Museum of the Holy of Mercy of Macau)이라 일컬어지는 곳인데, 1569년에 창설된 아시아 최초의 자선복지 활용 시설로서 저 아름답게 흰 건물은 18세기 후반에 지어졌다고 하며, 중국 초대주교의 유골등이 보관된 2층 박물관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인자당(仁慈堂)...자비의 성체 박물관(The Museum of the Holy of Mercy of Macau)건물...>

<광장 왼쪽의 상가 건물들... 바닥은 모자이크 처리로 잘 정비되어 있다.>

세나도 광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성 도미니크 교회(St. Dominic Church)가 보인다.

1587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며 1997년에 수리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때에도 대규모 수리중이었다.

<크림색의 색조와 문짝의 녹색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박물관이다.>

이 건물은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과 웅장한 목조 천장, 값진 조각상 및 기타 성인들의 미술품 등으로 유명하며, 이 중 일부는 옛 종루안에 만들어진 종교예술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주말에는 실내악 연주회가 개최되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4층짜리 종루(鐘樓) 건물에 있는 종교예술 박물관 전시물..... 聖物과 갖가지 진귀품들이다.>

<이 건물이 종루임을 말해주는 커다란 종 2개가 꼭대기 층에 매달려 있다..... >

ㅇ 성 바울 성당 유적 (Ruins of St. Paul)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들라면 바로 이 '성 바울 성당 유적'이 아닐까 싶다.

원래 포르투칼 지배를 오래 받은 영향인지 천주교 관련 유적과 유물이 많은 곳이 마카오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신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 도미니크 교회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지면 매우 복잡한 상가거리가 나오는데 대삼파가(大三巴街)이다.

이곳 좌우측에 늘어선 점포들 대부분이 육포와 특유의 과자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지나가는 행인이나 관광객들에게 육포도 잘라주고, 과자도 나눠주면서 적극적으로 시식을 권하는 곳이다.

한 개씩 맛보면서 납작한 돌들이 이쁘게 깔린 보도를 걸어 가면 높은 계단위에 보이는 것이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이다.

<행인과 관광객들에게 직접 만든 과자를 먹어보라고 권하는 모습....>

<상가 끝.....성 바울 성당의 계단 아래에는 재미있는 조각상이 있었다...>

<계단위에 장엄하게 서 있는 성 바울 성당 유적....>

성 바울 성당은 원래 성 안토니오 교회의 예배당이었으나 몇 번의 화재로 소실 되었다가 1582년에 현재위치로 옮겼다.

그후 1601년 화재로 1602~1603년에 다시 세웠으나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설계되었고, 종교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피난해 온 일본인들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62년 예수회가 추방된후 1831년부터 병사들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1835년 성당과 인접한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정면과 계단, 일부 벽 및 지하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다.

그후 1837년까지는 경내가 묘지로 쓰였다고 하며, 남아있는 건물 외관은 예수회의 전형적인 서양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고 거대한 돌로 짜 맞추었는데 모두 35년이 걸렸다고 한다.

높이 19m, 폭 20m로 상하 4단으로 된외관에는 마치 숨은그림 찾기처럼 스무개 가까운 상징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성당의 지하실에는 1996년에 개관한 종교 예술 박물관이 있는데예수회 신부인 발리그나노의 묘와 일본인과 베트남 및 일본인 선교사들의 유골, 성당 원형을 복원한 모형, 그리고 17세기 종교 예술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 묘소... 왼쪽은 유골들이 켜켜로 쌓여 있는 유리로 된 공간이다.>

ㅇ 몬테 요새(Monte Fortress)

성 바울 성당 바로 옆은 몬테 요새가 있고 그 요새 안에는 마카오 박물관이 있어 함께 둘러 볼 수 있다.

몬테 요새는 1617~1626년에 건설된 높이 53m의 요새로 1622년 6월 24일, 이 요새의 대포가 마카오를 침략하는 네덜란드 함대의 탄약고를 명중시켜 이 도시를 구했다고 하며, 그때문에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는 그날을 祝日로 기념했다고 한다.

요새 안의 마카오 박물관은 450 여년간의 마카오 역사를 보여 주고 있는데 입장료를 받지만 15일에는 무료이다.

<몬테 요새의 대포.....>

<마카오 박물관에서 발견한 지도 한장.... 독도가 한국땅으로 표기되어 있다.>

ㅇ 마카오 타워 (Macau Tower)

중심 번화가와 성 바울 성당등을 둘러 본 후에, 어디를 가볼까 망설였다.

마카오에 왔으니 카지노에도 가 봤으면 싶었고 김대건 신부 유적도 찾아봐야겠고, 또 다른 지역도 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하루 일정으로 넘어와 저녁이면 홍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마카오의 심벌이 된 마카오 타워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세계에서 10번째 높은 (높이 338m)마카오 타워(Macau Tower)는 2001년 12월에매립지에 세워졌으며,58층이 일반 전망대이고 꼭대기 61층은 옥외전망대로 되어 있으며 중간의 59층과 60층은레스토랑과 라운지인데마카오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진짜 중요한것은 이곳에서 경험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223m 상공의 옥외전망대 유리창 바깥에서 행해지는 Sky Jump와 바깥쪽 난간을 걸어보는 Sky Walk...그리고 타워의 마스트(높이100m) 꼭대기까지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 338m까지 도달하는 MAST CLIMB등이다.

우리나라는 안전문제로 인하여 이런 상황에서 돈을 내고 번지점프나 워킹, 클라이밍을 해본다는걸 상상도 못할텐데...

과연 관광대국 홍콩이요 마카오다 싶었다.

마침 타워에 올라갔을때 번지점프나 클라이밍은 보질 못했구 스카이워킹하는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안전로프를 걸고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방문객들 대여섯명이 안내 조교의 인솔을 따라 223m 상공의 유리창밖으로 타워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인데 얼굴 표정들이 즐거워하면서도 공포감에 질려 사색이 되고 있었다.

<마카오 타워 (Macau Tower) 전경....223m 까지 올라가는데 1분 걸린다.>

<스카이 워크 (Sky Walk)를 즐기는(?) 사람들.... 타워의바깥쪽 오픈 공간이다.>

<스카이 워크를 하는 외곽의 난간 바닥....개방된 공간에서 걸어다니는데 탑아래가 아득하게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은 담이 적어서 돈을 준다 해도 밖에서는 못 걷겠다....ㅎㅎ

그대신 58층 전망대 바닥의 일부를 투명 유리마루로 해놓고 그 위를 걸어보게 하는데 그것조차도 아득하여 덜덜 떨린다.

42밀리 특수 유리마루는 1.2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고 한다.

<58층 전망대 마루중 일부는 유리로 되어있다...>

<타워에서 내려다 본 마카오 시내 전경....>

<마카오 시내 카지노 건물 야경....불야성이란 이를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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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gfriend

 
[스크랩]테네시의 챠타누가(Chattanooga) 2006/07/31 07:47추천0스크랩0
원문출처 : tattersall in Atlanta..

DSC00786.JPG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거의 정해져 있지가 않다.

그것도 바람이 불어야 떠나진다.

아틀란타에서 두어시간 달리면 또 다른 풍경과 정취를 느낄수 있는 곳이 나온다.

테네시주의 차타누가는 주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다.

16세기 스페인의 탐험가에 의해 그 자취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한때 인디언과의 무역권을 쟁취하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도시는 새롭게 리모델링 된 까닭에

유럽적인 풍취가 건물곳곳에 남아있다.

아담하고 깨끗하다는 인상이 첫번째로 와 닿는다.

1박 2일 정도면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 둘러볼 수 있는 사이즈다.

아틀란타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별 부담없이 출발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겠다..

DSC00795.JPG

Walnut street bridge라는 이름의 다리다.

이 다리는 테네시강을 가로지르는 보도교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조깅을 하기도 한다.

1895년인가...만들어진 다리다...

다리에서 투망을 해서 고기를 잡던 초창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투망이다.

참..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더불어 1800년대 이들은 이런 다리를 건설했다...

그때 우리는 아직도 짚신 꼬아서 신고 다닐때에...

DSC00806.JPG

강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조깅을 하는 것도 괜찮을듯....

나무로 바닥이 만들어졌기에 걷는 느낌도 좋았다.

테네시강이 그 밑으로 흐른다...

간만에 좀 높은 곳에서 밑을 쳐다보았기에...약간..어질....넘사스럽게...

DSC00840.JPG

테네시 아쿠아리움이 보인다.

아틀란타에 '초대형 활어센터'가 생기기전엔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아틀란타의 아쿠어리움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래도 아틀란타엔 저렇게 풍광 좋은 강이 없기에 한 점 먹고 들어간다..

도시 관광차원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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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강변에 세워져 있는 것이 Hunter Museum of American Art 이다..

한마디로 미국 초창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www.huntermuseum.org 에 들어가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얻을수 있다.

DSC00812.JPGDSC00862.JPG

강 자락을 뒤로 하고 자리 잡은 뮤지엄은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DSC00867.JPG

저렇듯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그 날 하루의 피곤과 근심도 저 강물에 따라 흘러보낼수 있을듯.....

DSC00887.JPG

어느덧 도시의 하루가 저문다.

낯선 곳에 온 이방인들도 제각기 자신들의 자리로 찾아들어가는 시간이다.

이 도시 어디엔가 있다는 '그로셔리'를 물어 물어 찾아나섰다.

어째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흑인들이었다...

다섯 명에게 물어봤다....

다 제각기 설명이 달랐다....

그래도...그게 낯선 곳을 찾아 여행하는 묘미다...

그런다고 내가 못 찾으랴...

결국은 찾아간 곳.....

DSC00888.JPG

아이들 먹을 것과 싱싱한 채소류...로티세리 치킨이 있어서 보니...몰골이 영 아니었다..

다음 날을 위해서 이제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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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찾아온 곳이 이곳..

이곳 Lookout Mt.을 올라가는 Incline Railway를 찾았다.

1895년에 이 철도 역시 만들어 졌단다....음메..기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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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차장 바로 옆 개인 주택에 서있던 앙증맞은 폭스바겐 트럭...

저 트럭을 타고 떠나는 여행도 멋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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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차가 산 꼭대기?로 올라갈 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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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타...산꼭대기까지철로를 깔고 기차를 다니게 할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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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도 저 꼭대기까지 기차가 기어올라갈까.....

올라가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쭈르르 미끌어져 내려가면...이건 완조니 청룡열찬데....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DSC00944.JPG

그의 장상에까지 다 올라와서

기차가 철로위에서 멈췄을때...일종의 짜릿한 공포감이...

기차는 정상으로 뒤로 올라갔기에 그 공포감이 더했다...

그러니까 승객들은 바닥에서 점점 올라가는 것을 눈으로 실감할수 있게 좌석배치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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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out Mt.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차탸누가...

차타누가는 원래 인디언들의 말이고, Lookout City라는 초기의 이름이 있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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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꼭기에도 저렇게 소담스러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산동네 사람들?

근데..산동네에 사는 사람들 치곤...분위기는 있는대로 해놓고 살고 있었다...

우리네의 산동네하곤 차원이 다른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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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산의 끝자락엔 Point Park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치열한 남북전쟁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야 'Civil War'라고 부르지만...

어찌보면 동족상잔의 비극과 같은 맥락이다...

독립전쟁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동기하에 치루어진 '내전'

만약, 남부동맹군이 이겼다면...

지금 미국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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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omattox는 남북전쟁사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곳이다.

남부의 리 장군이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을 한 곳이고...

남북전쟁 최후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저곳은 버지니아 린치버그라는 곳에서 한 시간도 채 안되는 곳에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가봤으니깐 ㅎㅎㅎ

남북전쟁의 여러가지 자료들을 구경할수있고, 살수도 있는 일종의 기념품가게 같은곳...

'죽기엔 너무 어려'....돌격 앞으로의 명령에 북을 쳤던...저 어린 아이들..

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서였을까......

최신식 최첨단무기로 무장한 요즘의 미국군대의 첫 걸음도...

탄약을 재고 쏘우고, 급하면 칼로 베어야 했던 저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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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그때 당시벌어진 '차타누가전투'남북전쟁을 재현한 박물관이 있다.

www.battlesforchattanooga.com 으로 찾아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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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다고 그 꼭대기에서 늘 머무를수 만은 없다...

두번 다시 올 기약을 뒤로 한채

하산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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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머리핀의 둘째와 그 언니....

언제까지..부모 등쌀에 밀려서 따라 다녀줄지......

야..이넘들아...나두 힘 없음...못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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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면서 봤던 폭스바겐 트럭과 이종1셋트로 갔구 다니믄 딱 좋겠다...

자...이제 어디로 가나?

다음 목적지인 Rock City로 기수를 돌렸다....

가자...네 발 달린 차가 어딘들 못가랴.......

그럼 'Rock city' 이야그는?

다음편을 기대하시라....

TO BE CONTINUED~~~

Aselin Debison-Somewhere Over The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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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괴레메 계곡의 버섯바위와 바위동굴

글과 사진 : 화니


마치 스머피가 사는 마을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사는 마을 같은 곳.
가파도키아의 괴레메계곡은 화산재로 형성되어 인위적으로 동굴을 파기가 좋아 이런 모습의 마을이 되었답니다. 
313년 로마교황이 기독교를 공인하자 근처의 지하도시에서 은거하며 살던 기독교인들이 나와서 바위동굴을 파서 교회를 짓고 집을 지어서 살던 마을입니다. 
교회가 많아서 매일 교회를 바꾸어 가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최근까지 주민이 거주 했으나 너무 많이 바위를 파고 동굴이 오래되어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터키정부에서 퇴거 명령을 내려서 대부분 비어 있으나 일부 바위동굴에는 주민이 거주하거나 창고로 사용하고 
일부동굴은 호텔과 카페로 개조되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스타워즈의 외계인 마을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1. 교회와 집을 짓고 살던 바위 동굴


↓2. 화산재로 생긴 버섯바위


↓3.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교회 입니다


↓4. 교회 내부에서 바라본 풍경


↓5. 교회 내부 정면의 벽화


↓ 6. 교회 내부의 거주 공간


↓ 7. 교회 내부의 벽


↓ 8. 아무리 보아도 처음보는 신기한 풍경입니다


↓ 9. 근처에는 바위동굴 주택이 엄청 많습니다


↓10. 바위 동굴 주택


↓11. 동굴 주택과 벽돌 주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 12. 이곳에는 약 2만 여명의 기독교인이 살았다고 합니다


↓13. 신 시가지와 혼재된 모습입니다



파묵깔레와 히에라폴리스 그리고 올림푸스 산(터키)

고대부터 현재까지 온천물이 엄청나게 많이 솟아 나오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온천은 조그만 구멍에서 나오거나
펌프로 퍼 올리는데,
이곳은 시냇물처럼 엄청 많이 나옵니다.
게다가 온천물에 녹아서 함께나온 석회성분이 산을 이루어
마치 목화같이 보인다고 해서 목화성(파묵깔레)으로 부르는 곳.
로마시대에는 로마에 있는 교황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며
그 당시 세계 각국에서 병치료를 위해서 부자들이 왔었으며
병이 치료되면 고국으로 돌아가고,
치료를 못하면 이곳에 죽어서 호화로운 무덤을 남겼는데
현재 발굴된 석관만 1,700여가가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동양인의 무덤도 여러 개 있는데 중국인으로 추정한다고 하며
이곳을 죽은자의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합니다.
"나 어제 당신과 같았으나 내일은 당신이 나와 같으리라" -비석 하나의 글귀-
이곳은 온천물에 석회암이 녹아 흘러내리면서
마치 우리의 천수답 논처럼 기이한 형상을 만들고 그곳에는 온천물이 고여있으며
서양인들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않고
비키니 등 수영복 차림으로 이지역을 활보하거나 온천물에 온몸을 담그고
동양인들 특히 한국인 여자들은 양말만 벗은 채 양산을 쓰고 다닙니다.
이곳 터키의 강한 햇빛을 피하느라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오직 한국인 뿐 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노천 온천 목욕탕이 별도로 있으며
아래의 휴양도시에 있는 모든 숙박업소는 자체 온천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전경의 일부분


↓2. 전경의 일부분(오른쪽에 관광객 무리가 조그맣게 보입니다)


↓3. 위 사진에서 보이는 언덕 넘어 쪽 전경의 일부


↓4. 언덕에서 다시 앞쪽 부분을 향해


↓5. 이곳는 로마시대에 커다란 휴양도시로 대형 원형극장도 있습니 다.


↓ 6. 아래 쪽에서 촬영


↓ 7. 도미테우스 황제가 다녀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도미테우스 기념문도 있습니다


↓ 8. 2000년 전에 이렇게 정교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 9.대리석을 마치 두부 자르듯 정교한 쐐기 형태로 다듬어 끼워 맞추었답니다


↓10. 로마시대의 온천 목욕탕 건물 입니다


↓11. 죽은자의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일부분 (석관의 내부가 보이는 것)


↓ 12.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모이다 보니 무덤의 형태가 아주 다양 합니다


↓13. 이곳에는 수백년 동안 묘지로 사용하다 보니 지진 등으로 흙에 묻히고 그위에 또 무덤이 생겨났으며나중에 발굴해 보니
이렇게 이중으로 무덤이 형성된 것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 발굴위치에 복원


↓14. 동양인의 무덤 / 내부는 석실형태임

이곳을 지나서 그리스시대 올림푸스산의 꺼지지 않는 불을 보러 갔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이곳이 그리스의 영토이었고 이어서 로마의 영토로 서양인이 살던지역 이었으나
이민족인 터키(돌궐족)인은 1300년대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때 이곳에서 성화를 채화했다고 하고
비가 여러날 오면 불이 꺼졌다가 다시 햇빛이 비추면 자연발화 한다고 합니다.

↓15. 올림푸스 산으로 가는 길 도중의 차창 밖 풍경


↓ 16. 산으로 올라가는 길 / 소나무가 많더군요


↓ 17. 서양인이 꺼지지 않는 불에 불을 붙여 보네요


↓ 18. 이곳에는 불이 붙는 장소가 약 10개소 정도가 분포해 있습니다


↓19. 고대 그리스 시대 신전을 세웠던 흔적들



화려한 로마도시 에베소 (에페소 )
터키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가 컷던 곳 입니다.
2,000년전 로마시대에 번성했던 도시이며 성경의 에베소서가 쓰여지게된 도시이기에 더욱...
그런데 실제 도시는 상상했던것 보다 화려한 도시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도로가 대리석으로 깔려있고,
건축물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대형 목욕탕과 도서관 등....

↓1. 매표소를 통과하여 첫번 째로 보이는 신전터 (기둥이 있는 부분 전체)


↓2. 25,00명이 수용 가능한 원형극장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예수님 말씀을 전했으며후일 바울이 에베소인들(성도들)에게 씌여진 편지가 에베소서로 남게 됨.


↓3. 로마교황이 다녀간 것을 기념해서 세운 교황의 신전


↓4. 본래 에페소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겼으며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신전보다 약 100여미터 위에서 발굴되어 발굴된 위치에 전시되어 있음


↓5. 여러 신전을 지나고 나서 도서관이 있는 도시의 중앙으로 내려가는 길


↓ 6. 로마황제가 다녀간 것을 기념해서 세운 분수대라고 합니다


↓ 7. 목욕탕 내부 /고온탕, 온탕, 냉탕 등으로 지어졌다고 함


↓ 8. 목욕탕의 입구?


↓ 9. 공중 화장실 (대리석 구멍에 볼 일을 보면 위 목욕탕 폐수가 그 아래로 흘러서자동적으로 수세식(?) 처리되는 구조)


↓10. 에페소 도서관을 배경으로 촬영


↓11. 터키의 초등학생이 여행와서 사진을 촬영 중입니다


↓ 12. 에페소의 당시 인구가 5~7만으로 추정되는데 이곳 원형극장은 25,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13. 에페소에서 항구로 통하는 길(본래 이곳에서 1키로 털어진 곳이 항구이었으나
그동안 지진 등으로 구조가 변해서 현재는 약6키로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음)
지진과 함께 항구가 멀어진 것이 도시멸망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14. 초기(박해를 받던시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암호표시


↓15. 에페소 발굴 도시에서 약 1카로 떨어진 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성채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도시 전체에 유물이 산재해 있다.
사실 에페소는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있지만 정확하게 도시의 기원을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곳을 지나갔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유적을 볼 수 있는 유적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는 로마제국 당시 아시아의 수도를 페르가뭄에서 에페소로 옮긴 덕에 많은 건축이 이루어지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체류하기도 했으며,
이후 아우구스트스 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로마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기원 후에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이곳에 전도 여행을 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7세기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힘이 커져 잦은 침략으로 피폐해 갔으며
이후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에 놓이게 되었다.
현재의 에페소는 역사 유적과 건축, 기독교 성지순례를 하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에게해의 한가로움과 지중해의 여유로움까지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등 대도시에서 멀어 여행하기 쉽지는 않지만
도시 곳곳에 산재한 유적들과 한적함으로 점점 더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에페소는 에게해에 인접한 곳으로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여름에는 더운 편이며 겨울에는 온난하다.
때문에 10월까지도 해수욕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름이라도 밤에는 기온이 내려갈 수 있으니
얇은 긴소매의 옷이 있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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