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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30 영국 호수 국립공원
  2. 2006.09.30 델리 역사기행
  3. 2006.09.30 암스테르담에서
  4. 2006.09.30 길위에서

 
다시 보는 영국 호수국립공원 2006/08/08 01:31추천0스크랩1

최근 제가좋아하는 조선일보 후배 기자 2명이 영국으로 떠납니다.

산업부의 조형래 기자는 영국문화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요크 대학에서 1년간 연수를 위해 8월21일 출국합니다(요크는호수국립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지요).

또 사회부의 김영진 기자는 영국 단기특파원으로 선발되어10월부터 1년정도 근무할 예정입니다.

둘다 착하고 유능한후배여서,영국의 아름답고 평화로운정경 속에서 잘 지내다가 귀국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요즘 국내 돌아가는 꼴이 '김정일 장군 만만세' 분위기에다 '김(정일)사모'들이"나 잡아봐라"하고 큰 소리치면서 커밍아웃하고 있는 시국이군요.

전엔 설마 그렇게까지야......라고 생각했는데,안이한 판단이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속상하시는 분은, 워즈워드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영국의 Lake District National Park 사진을 보면서 마음의 평정을 얻어 보십시오(여기에 실린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 아닙니다).

Location map of Lake District National Park

Grasmere from Loughrigg Fell

Ennerdale from Green Gable summit

48 kbyte 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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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30. 15:12 여행,레저

델리 역사기행

 
델리역사기행-후마윤 무덤 2006/08/04 16:23추천1스크랩2

후마윤_무덤_전경.JPG

(후마윤의 무덤 전경)

후마윤의 무덤은 델리가 자랑하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중 하나다. 가까이 살면 언제든지 가볼 수 있어 안가보게 되는데 후마윤의 무덤이 그런 꼴이었다. 이러다가는 델리에 1년 살고도 가보지 못할까봐 발걸음을 했다.

후마윤_무덤_들어가는_길.JPG공작.JPG

(들어가는 입구와 공작 한 마리)

후마윤은 무굴제국의 2대 황제다. 무덤은 델리 시내 동쪽의 니자무딘 역 인근에 있었다. 일대는 무슬림 거주지역이었다. 흰색 옷에 흰색 모자를 쓴 무슬림들이 많이 보였다. 무덤 입구는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입장 티켓을 구입해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데 공작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공작은 인도의 나라새이다. 무덤 구역의 문 위에 걸터 앉아있는 자태가 예쁘다. 무덤 구역으로 들어가는 데 문 안쪽에 후마윤의 무덤 지역을 정리 복원한 내용을 사진으로 정리해놓았다. 전에는 일대에 불법 건물이 가득했는데, 모두 철거 이주시켰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후마윤의 초상화가 있다. 의자에 두 손을 단정하게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수염이 새카만 걸 보니 젊었을 때 모습이다.

후마윤.JPG

(후마윤의 초상화)

그 밑으로 재위 기간 표시가 나와있다. 1530~1540년, 1555~1556년. 재위 기간이 두 시기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 후마윤은 15년간이나 제위에서 쫒겨났다가절치부심끝에 옥좌를 되찾은 사람이다.죽었다 살아났기에후마윤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후마윤이 아버지 바부르로부터 물려받은 제국은 무굴제국의 일부였다. 몽골 티무르 계열인 선왕은 제국의 모두를 후마윤에게 넘기지 않았다. 네명의 아들에게 영토를 나눠줬다. 몽골의 징기스칸이 그가 이룬 대제국을 아들들에게 나눠준 것과 같았다.

큰 아들인 후마윤은 델리와 수도 아그라가 포함된 북인도를 받았고, 동생 카므란 미르자는 아프간과 펀잡 일대를 상속했다. 후마윤의 나이 22살이었다. 그는 한량없이 좋은 사람이었으나 좋은 지도자는 못됐다. 그의 여동생 굴바단 베굼은 자서전에서 너무 관대해, 자신에게 일부러 도발해오는 사람들을 끝없이 용서했다고 말하고 있다.

후마윤을 위협한 최대 세력은 동쪽 비하르에 자리잡은 쉐르 샤 수르였다. 그는 결국1540년 5월 17일 쉐르 샤의 군대에 카노지에서참패하고 수도 아그라를 내줘야했다. 그는 일단 동생 카므란 미르자의 영토인 라호르(현 파키스탄 펀잡주 수도)로 도주했다. 하지만 쉐르 샤 수르는 펀잡을 향해 계속 압박해왔다. 이에 후마윤은 쉐르 샤 수르에게 편지를 보내 힌두스탄의 전부를 당신에게 남겨줬다. 그러니 라호르는 손대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는 카불을 당신을 위해 남겨놨다. 그곳으로 가라"였다. 카불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이다.

카불행도 여의치 않았다. 동생 카므란 미르자가 배신하고, 카불에 있으면서 적대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후마윤은 서쪽으로 더 가서 이란의 사파빗 왕가에서 망명처를 구해야했다. 고초는 말할 수 없었다. 훗날 위대한 무굴 황제가 되는 아들 악바르는 행군을 감당할 수 없어 뒤에 남겨놓아야 했다. 악바르는 불과 생후 14개월의 어린 아이였다. 후마윤은 먹을 게 없어 군용 말을 죽여 병사의 투구에 물을 넣고 끓여먹어야 했다. 이란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불과 40여명이었다.

이란의 샤 타마습은 뜻밖에 후마윤을 환대했다. 왕의 손님으로 대우해 좋은 거처와 음식을 제공했다. 두 사람의 만나는 장면은 이란 이스파한의 체헬 소톤 궁전에 벽화로 남아있다고 한다.

건물.JPG

샤 타마습은 후마윤에게 환대의 조건을 하나 걸었다. 수니파에서 시아파로 개종하라고 요구했다. (이란은 지금도 최대 시아파 국가이다) 후마윤은 결국 시아파로 개종했고, 샤 타마습은 이에 1만2000명의 기마부대 지원을 약속했다. 후마윤은 빌린 병력을 갖고 아프가니스탄의 동생 카므란과 아스카리를 공격했다. 후마윤은 두 동생을 생포한뒤 죽이지 않았다. 대신 이들을 메카로 순례를 보냈다. 두 사람은 순례길에서 시리아의 사막과 메카 인근에서 각각 숨졌다.

후마윤은 인도를 향해 진격했고, 쉐르 샤 수르와 그의 아들(이슬람 샤)가 1546년, 1554년 사망한 이후 약화된 북인도의 왕국을 멸망시켰다. 그가 델리에서 다시 제위에 오른 건 1555년 7월이었다. 제위를 빼앗긴지 15년만이었다.

후마윤은 이제 47세의 원숙한 나이였고,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강한 지도자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는 복귀 6개월만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죽고만다. 왕궁내 계단을 내려오다가 옷이 발에 걸려 넘어져 머리를 돌이 튀어나온 부분에 부딪혔다. 사흘 뒤에 숨졌다.

다웃의_별.JPG

(후마윤의 무덤 건물 벽에 만들어져있는 다윗의 별.)

몬순의 비에 젖어있는 붉은 색 후마윤 무덤 건물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사암으로 지은 거대한 무덤 건물은 그저 담담하게 다가왔다. 건축사 측면에서 후마윤 무덤은 무굴 양식을 구현한 초기의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을 모르는 기자의 눈에도 건물 지붕위의 장식들은 델리의 무굴 황성 레드포트에서 본 것과 같았다. 후마윤 무덤은 또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건물로 유명하다. 건물은 왕비가 이란에서 건축가를 초빙해 지었다.

후마윤_무덤.JPG

(후마윤의 무덤)

무덤 건물 안에는 그의 무덤은 단출했다. 흰색 대리석 관이 돌바닥에 솟아올라와 있을 뿐이었다. 아그라의 타지 마할에서 보았던 화려함도 없었다.

후마윤 무덤은 또하나의 역사적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무굴제국의 끝을 목도한 곳이다.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자파르1857년 델리에 밀려들어온 영국군을 피해 이곳에 숨어있다고 붙들렸다. 그는 소위 세포이의 난 주역에 지도자로 추대됐다가 영국군의 추적을 받았다. 황성인 레드 포트를 빠져나와 델리 남쪽의 옛 선조의 무덤속에 숨어들었던 것이다. 후마윤이 죽은 302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후마윤 무덤 어디에 숨어있다가 영국군에 의해 붙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을 듯 했다. 역사는 영욕으로 가득차 있고, 후마윤 무덤도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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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의 하루 2006/08/04 12:45추천0스크랩1

어제는 한국에서 오신 손님 부부가 계셔서 외출을 했다.
잠시 잠시 오는 화란비는 맞을 만해서

웬만하면 우산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제는 하루종일 장대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화란에 26년 사는 동안 우리들을 찾아온 손님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 나이가 변하면서

찾아오는 손님의 종류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 젊은 시절에는 부모님 연세의 손님들이 오셨고
내가 40대를 넘기니 내 친구들이나 형제 자매들이 방문을 했다.

50대가 되니 이제는 친구의 자녀들이 배낭 여행을 나왔다가 들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어느 해는 한 팀이 가고 나면 다른 팀이 올 정도로 손님이 이어진 적도 있다.

그런데 날씨가 멀쩡하다가도 손님만 오면 추위가 매섭게 되거나 장대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내가 괜히 미안해질 때가 많다.

Amsterdam-06-1.jpg

Amsterdam-06-3.jpg

<손님을 기다리며 비가 내리는 암스테르담 전경을 디카로 담아 보았다.

암스테르담은 바다를 끼고 형성된 도시이다.

구름은 온통 하늘을덮고 마치중세기의 어두운 그림을 보는 듯 하다.>

한국이 춥다고 해도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며 훈훈히 살다가
이층 구조인 우리 집에 오면

아무리 실내 온도를 올려놓아도추운가 보다.

우리 식구들은 이렇게 춥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모르는데
겨울에도 집안에서는 반소매만 입고 살던 손님들에게는

화란의 추위가 더 견디기 어려운 듯 하다.

특별히 볼만한 데라고는 풍차마을, 안네프랑크 하우스, 고흐 박물관 정도이고
운하를 따라 관광을 하는 정도로 화란은 볼 만한 것이 없다.

그냥 아기자기한 집과 운하가 볼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손님이 올 때마다수없이방문한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갈 때마다 유대인 학살의 참상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증거가 있는데도 신나치주의들은
유대인 학살은 없었으며 안네의 일기도 가짜라고 주장한다니

정신 나간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기도 하다.

암스테르담 시내에는 휴가철을 맞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넘치고
시내와는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살아온 내게는 별세계에 온 느낌이다.

Amsterdam-06-4.jpg

Amsterdam-06-5.jpg

<안네 프랑크 집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수상 가옥을 찍었다.>

안네 하우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뒤에 우산을 미쳐 준비하지 못한
한 화란인 가족이 비를 주룩주룩 맞고 서 있었다.

마침 우리 부부 우산이 골프 우산처럼 크기에

안으로 들어오라니까 주저하지 않고 세 명이 들어선다.
다섯 명이 한 우산 속에 서서 있으니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자기가 생각해도 다섯 명이 우산을 쓴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엄마와 작은 아들은 남고 큰아들인 듯한 남자애가 밖으로 나간다.

비가 와서 다행히 10여분 기다렸지 날씨가 좋았다면

여름 휴가철에는 30여분은 기다렸을 것이다.

고흐 박물관을 거쳐 식당으로 갈 즈음에 장대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태양이 미안한 듯 고개를 내민다.

오늘은 손님을 모시고 헤이그를 향해 간다.

<손님을 기다리며 비가 오는 바다를 보면서

차 안에서 들은 스텐카라진이 감동적이어서

음악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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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30. 15:06 여행,레저

길위에서

여행&산행관련
길 위에서
2006/08/03 오후 7:16 | 여행&산행관련

길 위에서
긴 장마가 끝나자 사람들은 태양과 겨루듯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꿈꾸던 남미여행을 준비하며 짐을 꾸리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늘 그러하듯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고 뒤적이다가 한 편의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쿠바혁명의 불꽃이었던 체 게바라에 대한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였다. 단란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의과대학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와 낡은 모터사이클 ‘포데로사’에 몸을 싣고 1만㎞의 기나긴 여행에 나선다. 무모하고 낭만적인 충동으로 시작된 이 여행은 처음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또래의 젊은 여성 사이를 좌충우돌 지나가는 두 젊은이의 구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타는 저녁놀이 내리는 대평원,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신비로운 안데스의 자태, 눈덮인 숲과 들의 고요와 평화 속에서 그들은 두 마리 야생동물처럼 마음껏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러나 여행이 계속되면서 두 사람은 그 아름다운 풍경 뒤에 깃들어 있는 짙은 어두움에 눈뜨게 된다. 부도덕한 토지 개발업자에게 집을 빼앗기고 정든 땅을 떠나 광산노동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극빈의 유랑 부부를 만나게 되고, 나환자촌에서는 고통을 운명처럼 떠안고 사는 비참한 존재들을 만난다. 같은 핏줄끼리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는 분열과 증오의 현실도 목도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외우며, 지독한 천식에 시달리던 병약한 청년 체 게바라의 남모르는 고뇌가 시작된다. 4개월여의 여행이 끝났을 때, 그는 이미 수줍음 많은 스물세 살의 의대생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의 몸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사회를 고치는 의사를 꿈꾸게 된다. 의대생 루쉰(魯迅)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서 중국혁명의 선봉에 섰던 것처럼.

여행이 끝나고 작별하는 시간에, 졸업 후의 취직자리를 알선해주겠다는 알베르토에게 말한다. “길 위에서 지내는 동안 내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고. 영화는 마지막으로 비행기의 트랩에 올라 손을 흔드는 체 게바라의 맑고 깊은 시선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후 그의 모습은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베레모를 쓰고 음영 짙은 눈빛으로 세계를 응시하는 그 유명한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겨진다.

의사의 길을 접고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한 게릴라 투쟁을 하다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하기까지, 그를 이끌어간 것은 권력에의 욕망이 아니라 밑바닥 삶을 사는 민중에 대한 기이할 정도의 애정이었다. 애초에 털털거리는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치기만만하게 떠난 여행이 아니었던들 모르긴 해도 그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닌 의사 에르네스토로 살며 평범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이 영화는, 때로 여행이 한 인생을 얼마나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섣불리 가방을 꾸리거나 함부로 문 밖에 나서려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행을 한다고 누구나 의대생이 혁명가가 되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낯선 길에서 그 세계관을 넓히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말을 타고 장장 17개월 동안이나 유럽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철학자 몽테뉴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명제들을 얻게 된다.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는 한국과 중국여행을 통해 ‘풍도’나 ‘돈황’같은 대륙적 시야의 소설을 쓰게 된다. 18세기에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여행기를 남긴 괴테는 자기 여행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해둔다. “내가 이처럼 놀라운 여행을 하는 것은 내가 보는 대상들에 비추어 나를 재발견하려는 것”이라고. 그리고 “하늘은 어디를 가나 푸르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세계 일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와 여행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든 채 역마차에 오른 괴테나 우리는 결국 같은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휴가를 보내려고 엄청난 인구가 공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TV가 보여준다. 실로 엑소더스의 긴 행렬을 연상케 한다. 이제 긴 여행을 떠나려는 나 역시 내 마음 속에서 무슨 변화인가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김병종 / 화가,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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